yasorich 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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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4.

    by. yasorich

    목차

      전쟁과 음식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 발전해왔다.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남겼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지혜를 발휘해왔다. 특히 음식은 생존의 최전선에서 창의성과 융통성이 빛나는 분야였다. 자원이 부족하고 물자가 끊긴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먹을 것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독특한 요리들이 탄생했다. 지금부터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이 낳은 대표적인 음식들과 그 배경을 살펴보며, 인간의 생존 본능과 창의성에 대해 되새겨 보고자 한다.

       

      스팸(Spam) –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

      스팸은 미국의 호멜(Hormel)사가 1937년에 개발한 통조림 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냉장 시설이 부족한 전장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고단백 식품이 필요했는데, 스팸은 바로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음식이었다. 미군은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 이 식품을 대량 공급했고, 그 결과 스팸은 연합군의 전쟁 식량으로 상징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스팸은 그 흔적을 남긴 지역에서 일반 식재료로 정착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하와이와 한국, 일본, 필리핀에서는 스팸이 각 나라 고유의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스팸 무스비’, ‘스팸 김밥’, ‘스팸 덮밥’ 등 다양한 요리로 사랑받고 있다.

       

      치킨 마르살라 – 병사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이탈리아의 전통 요리인 치킨 마르살라는 원래 귀족 가문에서 즐기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가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이 요리는 병사들의 식사로 변형되었다. 값싼 닭고기와 버섯, 와인(마르살라)을 이용해 풍미를 살린 이 요리는 전장에서도 병사들에게 인기 있었고, 이후 일반 가정에서도 즐겨 먹는 요리가 되었다.

       

      프렌치 프라이와 피쉬 앤 칩스 – 전쟁 속의 위안

      ‘프렌치 프라이’는 이름과 달리 벨기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서 활동하던 미군 병사들이 감자를 얇게 썰어 튀긴 음식에 감탄하며 ‘프렌치’(프랑스어 사용 지역)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영국의 대표 음식인 ‘피쉬 앤 칩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배급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영국 정부는 국민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이 음식을 배급에서 제외했고, 이는 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물자가 부족했던 시기, 감자와 생선을 조리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피쉬 앤 칩스는 전후에도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부대찌개 – 전쟁 폐허 속의 한식 혁신

      한국전쟁 직후, 한국은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했다. 그 시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 소시지, 치즈, 베이크드빈스 등의 서양식 재료에 고추장, 김치, 라면 등을 조합하여 탄생한 음식이 바로 ‘부대찌개’이다. 이 요리는 한국인들이 전통적인 식재료와 외래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결합한 결과로, 오늘날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 찌개 중 하나가 되었다.

      부대찌개는 단순히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재난 속에서 태어난 생존의 산물이자, 서로 다른 문화가 조우하고 융합된 한국 현대 음식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비스크 – 해양 전쟁이 낳은 프랑스식 수프

      프랑스 요리에서 고급 수프로 여겨지는 ‘비스크(Bisque)’는 원래 전쟁 중 버려진 새우나 게의 껍질, 어패류 찌꺼기를 활용해 만든 음식이었다. 해양 전투가 잦았던 시기, 바다에서 나는 자원이라도 아껴야 했던 병사들은 조개, 새우 껍질 등을 오래 끓여 국물을 우려내고 여기에 크림을 넣어 맛을 살렸다. 오늘날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별미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절박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음식은 희망이 된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자가 부족하고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음식을 발명하고, 남은 재료로 기적 같은 요리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수많은 음식들은 그런 위기의 순간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우리가 먹는 스팸볶음밥, 부대찌개, 피쉬 앤 칩스 모두 전쟁이라는 슬픈 배경에서 태어났지만, 그 음식들은 지금 우리에게 맛과 함께 생존의 지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문화를 담고 있으며, 심지어 절망 속에서도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음식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말없이 증언한다. 우리는 그 음식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